효행(孝行).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해 왔으며 인륜의 중요한 덕목이다. 19세기 이전의 중국은 천재(天災)와 끊임없는 난세(亂世)의 폭정(暴政)으로부터 자신들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혈족(血族)이 동거하여 가부장제(家父長制) 가족을 구성하여야 했고, 이런 구성원들이 부모를 봉양하고, 공경하며, 복종하고, 조상에게 봉제사(奉祭祀)하는 일이 의무화되면서 효사상이 사회규범으로 굳어졌다.
정명석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효순(孝順), 호는 경와(耕窩). 정재(正齋) 정지송(丁之松)의 후손이며, 아버지는 양산 지역의 유일(遺逸)로 이름난 정득(丁得)으로 임진왜란 때 김해 지역에서 양산 지역으로 피난해 와서 정착하였다. 정명석의 형은 양산의 유행(儒行)으로 알려진 정명희(丁鳴稀)이다.
정명석은 평소에 효성과 우애가 깊고 덕행이 높아 다른 사람들의 눈과 귀를 두렵게 하였으며, 유학자다운 풍모가 있었다. 정명석의 이러한 행적을 관찰사가 임금에게 글을 올려 보고하기도 하였다. 숙종 때 훈련판관이 추증되어 부역을 면제받았다.